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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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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 오페라 속의 미학 Ⅱ: 오페라, 낯선 사랑을 통역하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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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미학연구회 엮음, 이용숙·오희숙 책임편집, 모노폴리, 2019


 

​"'오페라, 낯선 사랑을 통역(通譯)하다'라는 이 책의 부제는 오페라 속에 담긴 사랑의 이면,
즉 '낯선' 사랑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 ​출판사 서평 중에서 -



오페라, 낯선 사랑을 통역(通譯)하다


극장(theatre)은 우리를 꿈꾸게 하는 공간인 동시에 꿈에서 깨우는 공간이다. 자신의 오페라 대본과 음악을 모두 직접 썼고 연출까지 맡았던 극장의 천재 리하르트 바그너는 “예술은 사회적 가치나 인간적 가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이 세계를 벗어나 대안의 세계로 도망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극장의 기능은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게 해주는 일종의 진통제 같은 것이다. 이처럼 19세기까지의 극장은 환상을 창조하고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이후 극장의 기능은 달라졌다. 극장은 현실도피의 공간, 환상과 자기과시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교육의 공간이 되었다. 낭만적 환상은 깨져야 했고 몰입과 감정이입은 방해를 받았다. 전 세계 오페라극장은 여전히 17~18세기 바로크와 고전주의, 19세기 낭만주의 작품들을 무대에 올리지만, 브레히트의 영향을 받은 20~21세기 오페라 연출가들은 원래의 원작 오페라와는 스타일도 메시지도 바뀐 오페라를 관객 앞에 내놓는다. 텅 빈 침대 위에서 18세기 드레스를 입고 탄식의 아리아를 노래하던 <피가로의 결혼>의 백작 부인은 이제 레깅스 차림으로 실내자전거에 앉아 피트니스 트레이닝을 하며 이 아리아를 부르게 되었다. 이처럼 원작의 무대를 현대로 옮겨오는 것은 관객이 마치 이웃집 일을 지켜보듯 극에 수월하게 공감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산업화 이후 자본주의의 발전이 인간성을 피폐하게 만들었음을 비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오페라 속의 미학Ⅰ>을 읽은 독자들의 격려와 성원에 힘입어 <오페라 속의 미학 II>를 기획하면서 음악미학연구회 필자들은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 오페라 속의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깊이 들여다보아야 할 그 이면의 상황’에 천착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오페라는 사랑을 테마로 한다. 그렇지만 하나 같이 사랑이라는 소재를 취하고 있어도, 사실 오페라 속의 사랑은 진지한 주제를 부드럽게 포장하는 데 사용된 달콤한 외피, 이를테면 당의정 같은 것이다. 더욱이 인간을 존재 자체가 아닌 수단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사랑이 불가능하다. 현대의 극장은 여러 시대의 다양한 주제를 지닌 수많은 오페라를 새롭게 해석하며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오페라, 낯선 사랑을 통역(通譯)하다’라는 이 책의 부제는 오페라 속에 담긴 사랑의 이면, 즉 ‘낯선’ 사랑에 대한 통찰을 의미한다. 이 책은 음악이 시대에 따라 다른 사랑, 더 나아가 인간사의 여러 면모를 어떻게 ‘통역’하여 풀어내는가에 주안점을 두어 바로크 시대부터 20세기까지를 아우르는 오페라 작품 11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